전기차 충전 인프라의 현재와 미래
지난 8월 ISO 15118 문서를 읽은 뒤로 충전 인프라에 큰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ISO 15118 기반 시스템은 전기차 충전뿐만 아니라 전기 거래 일반의 토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는 다음 세대로 진화하고 있고, 이렇게 PKI 기반 생태계가 갖춰지고 나면 현대의 인터넷 근간에서 동작하는 그것처럼 기반 기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응용 서비스들이 이 기반 기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됩니다.
표준 문서를 살펴본 후 실무에 필요한 세부 정보가 궁금했고, 구현 욕심도 생겨서 국내 충전기 제조업체에 ISO15118 기반 SECC 개발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진행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시장 독점을 대비하기 위한 초기 방향성을 제시할 필요성은 물론, 기술 도입을 가속할 수 있는 솔루션이 필요하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기술 용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제가 바라본 충전 인프라의 문제와 대안을 간단히 제시합니다.
1. 충전 인프라의 현재
e모빌리티 시장은 세분화되어 있고, 수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각자의 충전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충전 사업자의 충전소에서 충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용자는 여러 개의 결제앱과 더불어 충전소를 찾기 위한 추가적인 앱을 설치하고 가입해야 합니다.
로밍 서비스라는 대안이 있지만, 추가 요금 발생과 더불어 아래에서 언급할 편의성(인증 및 결제를 위한 사용자의 추가 행동)을 개선하지 못합니다.
원활한 전기차 충전을 위해 이 시장을 통합할 방법이 필요합니다.
2. 다가오는 새로운 충전 인프라
원활한 전기차 충전을 위해 이 시장을 통합할 플러그 앤 차지 기술이 있습니다. 플러그 앤 차지는 종속 효과가 없는 개방형 국제 표준인 ISO 15118을 기반으로 합니다.
이 표준을 통해 모든 자동차 제조업체, 서비스 제공업체 및 충전 네트워크 사업자는 전기차와 충전소 간의 안전한 통신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RFID 카드를 태그하거나 스마트 폰을 사용할 필요 없이 충전 세션을 간단하게 시작하고 중지할 수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이 기술을 도입해 상용화한 플레이어가 있고, 미국과 프랑스에서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 독일
- 미국
- 프랑스
- 영국
국내에는 현대 E-pit과, E-pit의 인증 시스템을 구축한 아우토크립트가 있습니다. 아우토크립트는 상용화된 서비스가 없고, 현대 E-pit는 제한적인 기능을 제공합니다. 현대 전기 자동차의 일부 모델은 유럽에서 Plug & Charge 서비스 플랫폼을 지원하는 반면, 추측건대 국내에서는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하려는 듯 합니다.
3. 다음 세대 충전 인프라 도입의 문제
기술의 흐름은 명약관화하지만, 도입에 걸림돌이 되는 현실적인 문제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 업그레이드와 같은 개발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과
- 이해관계 당사자들 간 관계를 조율할 거버넌스가 부재하다는 점입니다.
비용
- 모든 참여자는 새로운 인증 방식 도입을 위한 인증 서비스를 구축해야 합니다.
- 완속 충전기 하드웨어를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 완속 및 급속 충전기 그리고 전기차의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거버넌스
- 비용보다 더 큰 문제는 참여자들 간 계약을 처리할 수 있는 중개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 예컨대, 충전 사업자가 해당 기술을 구현한 충전기를 개발하더라도 OEM이나 EMSP와 같은 다른 참여자와 연동할 방안이 없기 때문에 운영이 불가능합니다.
- 즉, 인프라가 갖춰지기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 시장의 합의와 거버넌스 없이는 독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대기업이 독자적인 서비스를 구축하고 배타적으로 운영하게 되면 차량과 충전기 간 호환성을 보장할 수 없게 됩니다. 즉, 충전소별 충전이 안 되는 차량이 생길 수 있습니다.
- 기술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참여자별로 개별 계약을 맺고, 각각의 시스템과 일일이 연동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독점할 경우 계약 조건과 가격 그리고 기술적 측면과 분쟁 해결에 결정권을 갖게 되므로 초기 시장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4. 해결 방안
현시점에 이 기술을 지원하는 플랫폼은 세계적으로 두 손에 꼽힙니다. 점차 뛰어드는 업체가 늘어나겠지만, 플랫폼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을 유입시킬 수 있는 인센티브가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많은 전기차를 유입시킬지, 그리고 어떻게 많은 전기차 충전기를 유입시킬지 두가지 경우를 나누어 생각했습니다.
전기차의 경우
- 제조사와 계약을 맺더라도 현재 대부분의 전기차는 이 기술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활성화될 수가 없습니다. 제조사에서 이미 선적된 차량까지 업데이트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자에게 어댑터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테슬라에 J1772 어댑터를 사용하는 것처럼, 기존 차량에 어댑터를 꼽아 사용 가능하도록 합니다.
- 제조사 종속에서 벗어날 뿐 아니라, 당장의 사용자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 다른 한편으로는 제조사 역시 쉽게 인증 관련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해 보다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생태계가 구축되도록 합니다.
충전기의 경우
- 충전 사업자나 충전기 제조업체는 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도 쉽게 온보딩할 수 있도록 합니다.
- 충전기 OS를 비롯한 실제 차량 테스트가 가능하도록 어댑터와 서비스 킷을 제공하는 한편,
- 원가 혹은 오픈소스 하드웨어 모듈을 제공합니다.
- 개별적인 계약이나 독자적인 인증 서비스를 구축할 필요성을 제거합니다.
플러그 앤 차지 도입과 함께 고객 만족도는 향상될 것이고 따라서 충성도는 높아질 것입니다. 결국 수익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것입니다.